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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스토리

가죽을 접어 형태를 세우다, 폴렌느의 조형 문법

가죽을 접어 형태를 세우다, 폴렌느의 조형 문법

폴렌느의 백을 처음 손에 들면 무게중심이 먼저 느껴집니다. 가죽이 늘어져 형태를 잃는 대신, 접히고 겹친 자리에서 스스로 구조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공방에서 시작된 질문

폴렌느는 2016년 파리에서 앙투안·마티유·엘사 모테 삼남매가 함께 시작한 브랜드입니다. 출발점은 에르메스 공방 방문이었습니다. 장인의 작업을 가까이서 지켜본 뒤 남매가 품은 질문은 단순했습니다. 이 정도의 만듦새를 유지하면서 중간 유통 단계를 걷어내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그래서 폴렌느는 백화점이나 편집숍을 거치지 않는 직판 구조를 택했습니다. 브랜드가 소재와 공정을 직접 통제하고 그 결과를 곧바로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같은 해 첫 컬렉션에서 선보인 데뷔작 누메로 앙은 이 태도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폴렌느
누메로 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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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메로 앙 한 점에는 세 가지 가죽이 들어갑니다. 몸체와 크로스바디 스트랩은 그레인 레더, 접히는 폴드오버 플랩은 스웨이드, 잠금장치와 톱핸들은 스무스 레더입니다. 같은 색으로 맞추되 질감을 달리해서, 빛이 닿는 각도마다 다른 층이 드러나도록 설계했습니다. 로고를 크게 박는 대신 소재의 대비로 존재감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봉제선을 감추는 대신, 접힌 자리를 그대로 디자인의 언어로 삼았습니다.

우브리케라는 좌표

생산은 스페인 남부 우브리케의 아틀리에에서 이뤄집니다. 안달루시아 산간의 이 작은 마을은 수 세대에 걸쳐 가죽 공예를 이어온 곳으로, 여러 유럽 하우스가 이곳의 장인에게 작업을 맡깁니다. 폴렌느가 곡선이 많은 형태를 밀어붙일 수 있는 것도 이 기술 기반 덕분입니다. 평면을 이어 붙이는 것보다 한 장의 가죽을 접어 곡면을 세우는 쪽이 훨씬 까다로운 일이니까요.

소재 표기 읽는 법

폴렌느는 같은 모델이라도 그레인·스무스·텍스처드처럼 가죽 마감을 구분해 표기합니다. 그레인은 표면에 결이 잡혀 있어 흠집이 덜 보이고, 스무스는 매끈한 대신 사용 흔적이 그대로 남습니다. 색상만이 아니라 마감 표기를 함께 확인하시면 실물과의 간극을 줄일 수 있습니다.

나무 몰드와 깎아낸 모서리

폴렌느의 형태는 재단만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통카입니다. 이 크로스바디백의 둥근 실루엣은 가죽을 나무 몰드에 얹어 성형하는 과정을 거쳐 완성됩니다. 유럽 인증 탠너리에서 온 풀그레인 텍스처드 카프를 몸체에 쓰고, 스트랩만 스무스 레더로 바꿔 촉감의 차이를 남겼습니다.

모키는 반대 방향의 기술을 보여줍니다. 텍스처드 레더의 모서리를 깎아내 그 아래 스무스 레더가 드러나게 한 백입니다. 가죽을 덧대는 대신 덜어내서 대비를 만든 셈인데, 두께를 정확히 계산하지 않으면 성립하지 않는 마감입니다.

번호와 이름 사이

라인업은 크게 두 갈래로 읽힙니다. 누메로 앙, 누메로 디스처럼 번호를 단 계열은 브랜드의 기본 문법을 정리한 축이고, 심·통카·베리·모키처럼 이름을 가진 계열은 그 문법을 변주한 쪽입니다.

누메로 디스는 폼 패딩을 넣고 손바느질로 마감해 초승달 같은 곡선을 얻었습니다. 누메로 뇌프는 반대로 힘을 빼서, 흘러내리는 듯한 드레이프 실루엣을 만들었습니다. 풀그레인 텍스처드 카프에 코튼 안감을 받쳐 형태가 무너지지 않을 만큼만 지지력을 남긴 구성입니다.

이름을 가진 계열 쪽은 소재 실험이 더 자유롭습니다. 심은 텍스처드 그레인 카프를 기본으로 하되 라피아나 캔버스를 섞은 버전을 함께 냈고, 토트와 미니까지 파생형이 넓게 뻗어 있습니다. 베리는 에디션마다 풀그레인과 스무스를 오가며 같은 형태를 다른 인상으로 바꿔놓습니다.

어디부터 보면 좋을까

  1. 첫 폴렌느라면 누메로 앙브랜드의 문법이 가장 압축적으로 들어 있는 데뷔작입니다. 톱핸들과 크로스바디를 겸할 수 있어 활용 폭도 넓습니다.
  2. 가볍게 들고 싶다면 통카나 누메로 앙 나노둘 다 크로스바디 중심이라 일상에서 부담이 적습니다. 통카는 둥근 형태, 나노는 미니어처처럼 축소된 형태입니다.
  3. 수납이 우선이라면 심 토트이름 계열 중 가장 실용적인 축입니다. 형태가 스스로 서 있어 짐이 적을 때도 모양이 살아 있습니다.
  4. 부드러운 인상을 원한다면 누메로 뇌프각이 잡힌 백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 드레이프 실루엣이 대안이 됩니다.

로고가 크게 드러나지 않는 백을 찾고 계시다면 폴렌느는 형태 자체가 식별점이 되는 쪽에 가깝습니다. 판매처마다 취급하는 색상과 마감 조합이 다르니, 마음에 드는 모델이 있다면 마감 표기까지 확인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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